살펴 가시게...

by 카이젤블루 posted Jan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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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그룹과 시네마4D와 인연을 맺은지는 거의 11년이 되어 갑니다만...
시네마4D가 오랫동안 변방의 툴로 인식 받으면서, 저도 유저그룹 활동이 겉돌았었죠.
어쩌다 한번씩 들르던 눈팅족, 가끔 댓글질... 2002년도와 2004년도에 몇번인가 오프에 나가고...
저를 그래도 기억하시던 분은 아마 길동님이 유일했던 것으로 압니다.

여튼, 제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리라 마음 먹은 것은 2006년도 겨울의 송년회에 다녀오고 나서였습니다.
R10 버젼의 릴리즈 소식에 혹시나 싶어서 나갔던 송년회... 이단비님의 도움으로 저의 당시 거주지였던 부천에서 열렸었죠.
개인적으로 P님의 강연이었던 새로운 R10 버젼 캐릭터 툴 업데이트 내용에 경악을 하고,
자동책상의 알력으로 스러져 가던 마야를, 그 터무니 없는 방대함에 치어 꽤 오래 붙들고만 있던게 아깝고 아쉬운 미련이던 그 마야를,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기로 다짐을 했던 날이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으로 자리를 옮겨 송년회의 대미를 장식하자는 그 때...
저는 담배가 마침 바닥이 나서 잠시 편의점을 찾으러 나서려 했는데... 단비님과 철흥이가 같이 가자고 저를 붙잡았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때도 저를 기억하는 분들은 길동님하고 당시에 마루 인터내셔널의 담당자였던 김은주님이 유일했었습니다.

그렇게 철흥이를 처음 만났었습니다.
서글한 눈매, 사람 좋은 미소, 말수는 적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런 친구였습니다.
저도 사람을 처음 대할 때는 말 허트루 못하고, 나이가 구분되더라도 편하게 말 못하고 그런 타입인데...
'아휴 형님이신데, 말씀 낮추세요...?'하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함박 짓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아직도 남이 보기에는 걸음이 편치 않아 보이는데, 술이라도 들어가면 더 갈지자 걸음이 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처음 봤던 그 잠시 동행길에 스스럼없이, 가만히 내 팔을 부축하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착하디 착한 친구였기에... 일하던 직장과 제가 당시에 거주하던 동네가 가깝다는 이유로 종종 연락했었고,
내 고민, 머리 싸매고 싶은 사정, 속내 얘기를 비교적 술술 털어놨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함께 되고픈 인연이었는지...
제가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었고 서울 온수역에 자리를 잡았을때,
그 친구가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바로 근처에 잡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 뭐야~ 자네랑 한동네 이웃이 되부럿네...?'라고 웃으면서 악수하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동네가 '동네'답지 않게 좀 외진 곳이라서 근처에 편의점이 그 친구집 가까이 밖에 없었는데...
자주 마실 나가는 편에 종종 마주치면 안부 전하고 캔커피 한잔 마시고 그랬었습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고 어이가 없기까지 한 사실은...
저야 그 친구가 편하게 생각되어서, 속내 얘기까지 술술 꺼내 놓았으면서...
정작 그 친구... 철흥이가 무슨 고민이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많이 들어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말입니다.

"형님, 언제 맥주나 같이 한잔 하세요...?"
"응, 그래야지... 그러자고."

커피 한잔은 마셨으면서, '가까이 한동네 사니까' 버릇처럼 웃으면서 말하던 그 '맥주 한잔'은 끝내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에 정모 자리에서 반가운 모습 보였으면서도 그 '잔'은 부딪혀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자네랑 나랑........... 가까이.... 흔한 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랬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친구는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맥주 한잔'은 고사하고, 더는 츄리닝 편한 바람으로 마실 나갔다 우연처럼 웃으며 만나 커피 한잔, 담배 두개피...........
그 마저도 할 수 없게 되버렸습니다.


문상을 파하고...
정석님 덕분에 온수역까지 잘 닿았습니다.
무심결에 담배... 응, 떨어졌군... 무심결에 편의점이 있는 북부역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철흥이가 살던 집이 보입니다.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했습니다...
문상중에는 도무지 실감도 뭣도, 영정 사진을 보고 상주 유족을 뵈면서도, 믿을 수가 없던 탓에 내내 멍했었는데...
왜 지금........

편의점을 돌아나와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철흥이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을...
아직도 희미한 어둠 속에서 철흥이가 손흔들며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여줄거 같았는데.........
순간 심장이 너무 아파서....... 더는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미안했네... 철흥아...
고마웠고...
살펴 가시게...

훗날 내 가거든... 그땐 잊지말고 꼭 맥주 한잔 같이 하세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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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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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no good thing ever dies."    영화, "쇼생크 탈출" 中, Andy의 마지막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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