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공포의 장모님

by 달산 posted Oct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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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황해도가 고향이신 장모님은 6.25를 직접 겪으시고 고생길인 남한으로 내려오는 피난길을 경험하시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해의 작은 섬에 정착하셨다. 폭탄이 터지고 시체가 널브러지는 모습을 경험하셨다는 피난 얘기를 가끔 하시는데 그런 경험을 못 겪은 우리가 어찌 장모님의 얘기에 실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장모님은 전쟁을 피해 서해바다의 여러 섬들로 이리 저리 피난길을 옮겨 다니시다가 삶의 터전을 덕적도란 섬에 잡으셨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깃배를 타는 일이었고 성실한 장인어른 덕에 그때만 해도 그럭저럭 살만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고기잡이를 멀리 가신 장인어른이 풍랑을 만나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고 장모님 곁엔 어린 딸들이 여섯이 곁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장모님 나이가 34살이셨고 딸 여섯을 두고 떠나신 장인어른을 원망할 겨를 없이 장모님은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사셨다고 한다. 생선장사부터시작해서 안 해본 장사 없이 고생하시면서 딸 여섯을 먹이고 키우시고 공부시켰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몸이 성하신 곳이 없이 아파하신다.

그때 고생으로 뼈마디가 쑤셔도 사위들 오면 언제나 진수성찬으로 음식상을 차려주시고 아무리 김치 값이 비싸더라도 사위집에 김치 떨어지면 그 비싼 배추를 사서 포기김치를 담가 보내주신다. 추석지나고 그 비싸진 배추김치를 장모님 덕에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고춧가루도 절대로 사는 일이 없이 여름에 고추를 사다가 말려 일일이 고추 하나하나 닦아서 쪼개 빠신다. 떨리는 손으로 말이다.

못 믿을 일이지만 다 큰 딸 여섯이 있지만 아직도 김치는 장모님이 손수 담가 딸들에게 보내신다. 그 때마다 더 이상 힘들어서 김치를 못 담그겠다고 딸들에게 하소연하지만 언제나 김치 담그는 일은 장모님의 몫이다.

갖은 고생을 다 해 딸 여섯의 자식농사를 다 지으신 장모님은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당당하고 호탕하시다. 지금도 처형님들과 형님들이 다 모이는 날이면 모두들 장모님 앞에서 꼼짝 못하고 찍소리 못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장모님이 살아온 세월 앞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할 수 있으랴. 잘못하는 일이라도 있으면 사위들이라고 봐주는 게 없으시다. 호통과 욕을 주저 없이 날리신다. 그러면서도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은 떨리는 손을 마다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하셔서 보내주신다. 얼마 전에도 내가 좋아하는 양념게장을 해서 보내주셨다.

이런 카리스마가 있는 장모님은 또한 상당히 정치색이 뚜렷하시다. TV뉴스는 꼭 빼놓지 않고 보신다. 노무현을 좋아하고 한나라당을 싫어하신다. 여섯 사위 중에 유일하게 막내사위인 나와 정치색깔이 같으시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사위인 나한테 몰래 몰래 반찬을 더 보내주시곤 한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다른 사위들은 그 카리스마 장모님 앞에서 찍소리 못한다. 그런 날이면 한나라당을 신처럼 모시는 형님들은 장모님의 쌘드백이 되어 두들겨 맞는 신세가 된다.

그런 장모님이 말씀하신다. 죽기 전에 한번 봉화마을 가고 싶다고...
그래서 처형님들과 다 모여 11월중에 봉화마을 한번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근데 장모님은 한나라당 좋아하는 다른 사위 놈들은 안 데리고 간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신다...ㅋㅋㅋ

물론 장모님은 모든 사위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신다. 정치는 정치, 사위는 사위 딱 구분해가며 대해주시니까 누구든 장모님께 불평은 없다. 그저 감사할 따름의 마음뿐이다.

그리고 장모님은 TV드라마를 좋아하신다.
혼자 몸으로 온갖 고생을 하시다가 지금의 낙이라곤 손자 녀석들 보는 거 그리고 가족들 끼리 모여 즐기는 게 낙이시다. 딸들이 점잖은 남자 분을 만나서 좀 남은 인생 데이트도 하시고 즐기시며 사시라고 해도 대답은 “남자 놈들 드런 내 나서 싫다”고 하신다. 유일한 취미라곤 TV드라마를 보시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 내용 뻔하다. 남자들 여자들 바람피우는 게 핵심내용이다. 입이 걸걸하신 장모님 그 광경을 보면 대뜸 텔레비전을 향해 욕을 날리신다.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리모컨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한번은 남자 주인공이 바람피우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때 모든 사위가 있는 곳에서 장모님은 말씀하셨다.

“마누라 두고 바람피우는 저런 개쌍놈은 자지부랄탱이에 공구리를 처발라야한다...”

처형님들은 공구리란 장모님의 말씀에 모두 자지러지게 웃고 계셨지만 모든 사위들은 거시기를 움켜잡고 시퍼렇게 경직된 표정으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아무소리도 못하고 장모님과 같이 보고 있어야만 했다. 정말 장모님은 사위들이 바람피우는 거는 꿈에도 못 꾸게 만드신다.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처형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장모님을 거든다.

"바람피는 남자는 거시기에 제초제를 뿌려 싹을 잘라버려야 해..."


그리고 또 얼마 전엔 드라마를 보시는데 장모님이 다른 멘트를 날리셨다. 그때도 형님들과 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위들이 들으라고 하는 냥 TV속 바람피우는 주인공을 향해 욕을 한방 또 날리셨다.

“저런 개쌍놈들은 도끼로 대갈빡을 팍........”

뜨아...아...악..........도끼....그때도 형님들과 난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아무 소리내지 못하고 그 드라마를 장모님과 같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공포의 장모님이시다......ㅋㅋㅋ

어제도 감기 몸살이 걸려서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신 장모님!
그 걸걸한 욕.... 앞으로도 계속해서 들려주시고요...건강하시고 오래 사시기만을 바래요.
얼마 전에 떨리는 손으로 막내사위인 저에게만 보내주신 양념게장..잘 먹을게요.
그리고 이번 11월 달에 꼭 장모님 모시고 봉화마을 모시고 갈게요.....사랑합니다...장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