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일기] 나를 위한 동료들의 보복성 빈볼에 감동 받아

by 아토 posted Aug 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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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월7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홈에서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과 함께 맥주 한 잔 마시러 바를 찾았습니다. 오늘 경기는 4-1로 앞서 나가다 6-4까지 쫓기더니 결국 9회초 6-6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죠. 9회말 선두타자 맷 라포타의 끝내기 홈런이 없었다면 정말 힘든 밤을 보낼 뻔 했습니다. 클리블랜드가 앞서 나가다 역전 당한 경험이 많다 보니, 솔직히 큰 점수 차로 이긴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게 이긴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죠^^.

지난 4일이었나요?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 경기 기억나세요? 3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상대 투수 조시 베켓이 던진 시속 153km의 강속구가 제 오른 무릎을 강타했었잖아요. 순간 극심한 통증으로 쓰러지면서 경기가 한동안 중단됐는데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엄지손가락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돼서 또다시 무릎 부상으로 야구를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다행히 트레이너가 달려와서 제 무릎을 살핀 후 뼈에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저절로 ‘감사합니다’란 소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했어요. 원래 전 데드볼을 맞더라도 아픈 표정을 짓지 않고 출루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나 야구선수한테 무릎이나 허리는 아주 민감한 부위잖아요. 더욱이 통증이 있다 보니까 쉽게 일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순간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있을 리틀야구부 소속 아들 무빈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무빈이한테 아빠의 이미지는 쉽게 아프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강한 모습으로 인식돼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함부로 울어서도 안 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무빈이로선 아빠가 야구 공에 맞고 쓰러져 있는 장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떡 일어났습니다. 감독님한테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교체없이 1루로 뛰어나갔습니다. 운 좋게도 도루할 기회가 엿보였고 상대 배터리가 방심한 틈을 타 과감하게 2루를 향해 전력 질주도 해냈습니다. 시즌 14번째 도루였죠.


클리블랜드 타자 셸리 던컨(오른쪽)이 8회에 보스턴의 조시 베켓(왼쪽)과 다투고 있다. 두 팀은 클리블랜드 투수 젠슨 루이스가 던진 위협구로 시비가 붙었다. 루이스는 추신수가 데드볼을 맞자 동료애를 발휘해 보복성 위협구를 던졌다. (AP=연합뉴스)

제가 데드볼을 맞은 후 우리 팀 더그아웃에선 난리가 났었어요. 선수들마다 저한테 다가와선 ‘추, 괜찮느냐’고 물었고 투수들은 ‘우리도 가만 안 있을 테니까 기다려 달라’며 ‘전의(^^)’를 불태우더라고요. 몇몇 선수들은 ‘추, 네가 우리 팀의 베스트 선수인데, 어떻게 그런 선수를 상대로 빈볼을 던지느냐’며 흥분했습니다. 결국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집요하게 보스턴 선수들을 상대로 빈볼을 던지려 했는데 그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어요. 재미있는 것은 그럴 때마다 그 투수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와선 저한테 ‘추, 미안하다. 맞추려고 했는데 잘 안 맞았다’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이죠. 물론 보복성 투구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탄받을 수 있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선수들의 그런 모습에 감동 먹고 말았답니다. 우리 선수들이 진심으로 절 아끼고 위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클리블랜드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트레이드 되고 나이 어린 선수들이 모여 있다보니 상대팀 투수들이 만만히 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이번 보스턴전을 통해, 빈볼 사건을 통해, 선수들과의 끈끈한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내일도 저한테 행복한 날로 기억될 수 있길 바라면서….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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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봐도 추신수는 정말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