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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 조선 전시대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어 농민들은 항상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 갖가지 명목으로 수탈을 자행하였는데, 농민에게 면세를 약속하고 황무지 개간을 허가하여 주고도 추수기에 강제로 수세(收稅)하였다.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ㆍ반외세 운동


일본군과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후 지도자인 전봉준이 잡혀가게 된다.

결국 그들은 해산하였고 전봉준은 처형당하였다.


ugc.jpg

김구

동학농민운동을 이끌며 일제척결을 외치지만(2차봉기), 안중근은 아버지를 따라 이 동학당을 반란세력으로 간주하고 토벌대로 나서게 된다. 이 부분은 김구의 "백범일지"


Ahn.jpg

안중근

본관은 순흥, 황해도 출신

할아버지는 진해현감, 아버지는 진사


고종의 군대와 일본군, 아버지의 민병대로 구성된 토벌대

이 토벌대에 대장으로 나선 안중근은 전라도에 주둔하고 있던 동학농민들을 부녀자 관계없이 무참히 학살한다.


내일이 광복절 인데요.

안중근 의사가 또 TV에 나오시겠죠.

국가의 영웅으로서 말입니다.

  • ?
    나르디 2013.08.14 11:51

    어...........이런 역사가 있었나요???-.-;;;;


    몰랐네요. 다음 주에 독서토론이 근현대사인데...이 내용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profile
    [길동] 2013.08.14 12:00

    안중근이 문제가 아니죠

    관군인 부모의 뜻을 받들은 것인데요.

    저게 문제가 아니죠,


    저 사태에 껴든 일본놈들이 나쁜놈들이고

    대부분 저때 동학군이 무너진것이 

    내부 고발자의 소행이었지요..


    " 니 처자식들을 잘 먹여 줄터이니 불어라~" 그래서 내부 고발자들에게 의해 소탕당했다죠..



  • ?
    김건균 2013.08.14 13:43

    서구에서 파랑새는 '행복', '행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노래에 등장하는 파랑새는 일본군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동학농민운동 기념 행사를 예전에는 꽤 크게 했었는데..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라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학창시절에 동학농민운동 10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그 티셔츠 때문에 별명이 '녹두장군의 후예'라고..ㅋ


    요즘 어린 친구들은 한국사를 거의 배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역사 중 하나이지요.

  • profile
    [길동] 2013.08.15 03:41

    현대사 모르시는 분들


    http://www.podbbang.com/ch/4362


    추천!

  • ?
    체리보이즈 2013.08.16 00:45
    이렇게 안중근 나쁜놈 만드는것도 참 순식간이네요.
    안중근이 민족의 영웅이 아니면 그럼 누가 영웅입니까? 김구는 티끌 없습니까? 김구의 티클에 대해 제가 얘기 좀 할까요.
    독립군들끼리는 노선에 따라서 서로 치고 박고 안싸웠습니까? 자유시 참변처럼 그런 한 두가지 일로 독립군 전체가 매도되야 합니까.
    100년 전쟁에서 이승만에 대척해서 영웅으로 묘사하는 박용만에 대해서 중국 군벌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좀 얘기 좀 할까요?


    그리고 출처 좀 부탁드립니다. 안중근이 전라도 부녀자를 마구 학살했다는,
    인터넷에서 워낙 자기 멋대로 써대는 글이 많아서, 인터넷 글 말고 논문이나 책 부탁드립니다.

    당시 안중근의사가 기득권층인건 아무도 부인못하죠.
    그리고 동학군 진압한건 맞고요. 김구 진압한것도 사실이죠.
     그러면서 동학군 진압과정에서 안중근집안과 민씨집안의 쌀 500섬 일화는 아시는지요. 동학군 진압하고도 공으로 떠받들긴 커녕, 민씨 집안에게 죽다 살아난 이야긴 아시나요. 그런
    그 막장 시대였던 조선말기 시대를 욕해야지. 안중근을 욕합니까?
    마치 동학군 진압한 안중근은 죽일놈으로 묘사하는데,  홍경래의 난부터 민중의 난, 혁명이라고 하겠습니다. 민중의 혁명은 어느 시대나 있었습니다. 그럼 정부군 측에 선 사람들은 무조건 나쁜놈으로 모는 그런 흑백논리가 어딨습니까? 당시 특권층이였던 안중근과 농민 서민간의 계급투쟁, 계급갈등 내전으로 봐야지. 그 당시 기득권층, 특권층 중 한명인 안중근을 나쁜놈으로 몹니까?
    그리고 민중의
    동학운동을 내전으로 결말내버린 구한말의 조선의 말로의 비참함을 통해 역사를 배워야지. 안중근을 천하의 역적으로 만드는 그 이상한 논리는 이해가 안되는군요


    안중근이 전라도까지 대장으로 가서 토벌했다고요? 학살했다고요. 출처 부탁드립니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역사학자들 완전 막장인데요. 그 어떤 평전에서도 전라도에서 동학군 토벌했다는 얘기는 본적이 없는데, 뉴라이트만도 못한 학자들인데요.
    동학군은 그럼 학살 안했습니까? 동학군 얘기하면서 학살한 얘기를 강조하는것과 무슨 차이입니까?
    마치 여순사건때처럼 정부군은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반란군은 마치 학살도 없었던것처럼 얘기하던데, 상당히 선동적이군요.

    저번에는 도울 김용욱이 철 지난 브루스 커밍스 책 좀 보고 와서 마치 김일성을 해방군인 마냥
    6. 25 전쟁을 아주 정당화하는 강의를 1시간동안 방송에서 떠들고,  인터넷에서 그걸 마냥 진실로 착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던데, 참 어이 없더군요. 박명림 교수의 6. 25 기원과 발발 만 봐도 김용욱이 뭔 헛소리 했는지 뻔히 보이는데, 책은 안읽고 인터넷의 짜집기된 자료만 보고 있으니 인터넷의 폐해가 참 심각하군요.
  • ?
    .피. 2013.08.16 01:47

    국가는 존립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영웅" "위인" 시스템이 필요하고 

    항상 일방적인 성향을 국민에게 심어주어 알게 모르게 "애국심"을 조장하게 만듭니다.


    민족적 분열이 잦았던 민족일수록 국가에 충성한 "영웅"을 많이 만들어 냄으로서 기득권 외에 대중들을

    통제하는 정신적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특히나 여기서 말한 국가에 충성한 정치적 영웅들이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고..

    이것을 학자들은 "정치적 쇄뇌" 라 얘기하며

    일방적인 정치쇄뇌에 길들여진 나라일수록 정치적 후진국일 확율이 높다고 하죠.


    역사상 단한번도 "시민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나라

    자력으로 국가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나라

    이것은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쇄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동전은 항상 양면이 존재하죠.

    더욱이 옮바른 사실을 알기위해서는

    동전의 양면 둘다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체리보이즈 2013.08.16 22:04

    피드백이 좀 늦었습니다. 낮 시간은 좀 힘들나보니


    영웅이란 말이 거북스러우시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피 님이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제가 문제 삼은건, 안중근 평전도 봤고, 그 당시 역사책도 제법 많이 봤지만, 안중근의사가 황해도에서 동학군 토벌한 건 알고 있는데,  전라도에서 동학군 토벌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게다가 전라도 부녀자를 마구 학살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마치 전두환이 전라도 학살한것처럼 힘없는 약자를 학살한것 같은 뉘앙스로 말씀하셔서 출처 부탁드린거고요.

     그래서 검색 좀 해봤습니다.
    그런데 검색되는건 다 일베에서 전라도 비하하려고 지어낸 말 들 뿐입니다.

    전 우선 동학혁명을 절대 선이란 관점으로 보는것에도 동의가 안되지만요.
     동학혁명 당시 안중근 의사가 기득권층에 서서 동학군을 진압하고, 천주교 세력을 등에 얻고, 권세를 누리고, 동학군을 적대시한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시다면 그것대로 인정하고요. 그렇다고 안태훈 집안이 악덕 집안도 아니고, 어찌보면 그 당시 기득권층으로 가졌던 의식적인 한계라고 봅니다.
    피 님의 관점에서 충분히 안중근 의사의 기득권층 행동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동학운동 진압한 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려면 충분히 아래 글처럼 얘기하실 수 있는데,
    전라도에서 부녀자 학살처럼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사실로 학살자처럼 묘사하셨는데

    그부분에 대해서 수정 바랍니다. 아래 글봐도 그렇고, 안중근 의사가 전라도에 동학군 진압에 참여한적도 없고,

    부녀자 학살한 경우도 없습니다. 이런 선동성 글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웅에 대한 피님의 생각은 알겠는데요, 전 안중근 의사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존경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더욱 기억하고 추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현재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구와 안중근 모두 나라를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구와 안중근은 자신이 있던 위치가 달랐고, 안중근은 그 당시 기득권층였습니다. 안중근이 그 당시 이완용이나 다른 권력층처럼 일제에 순응하고 자신의 권세를 이어갔다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일제에 저항한 사람입니다. 나중엔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국권회복에 힘쓴 사람을 존경하지 않으면 누굴 존경할까요. 이렇게까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 있던가요?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한 독립운동가 이회영일가를 제외하고 망국 당시 대부분의 고관대작, 기득권층들은 일제에 협력하면서 은사금과 작위 받아서 호화호식했습니다.

    홍범도, 유관순, 김구, 안창호, 윤봉길, 강우규 그 명망있는 독립운동가 중 사회지도층이였던 사람 누가 있나요?
    3. 1 운동때 민족 대표들은 자신들의 미미한 사회적 명망 때문에 구한말의 고관대작들을 내세우려 접촉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지요? 결국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며 스스로 민족 대표의 고난의 십자가를 걸머졌습니다.
    양반 출신이든, 상놈 출신이든 자신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것을 행동으로 보여줬고, 자발적 희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분들을 존경하는건
    이건 국가의 쇄뇌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정신 때문에 지금도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고 추도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희생이 가치없는걸까요? 정말 그런걸까요? 단지 국가가 영웅이 필요해서 우리가 추모하는걸까요?

    기득권층의 막장 이야기는 충분히 봤고,
    친일 논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즘도 논란이 되는
     친일파 기준을 어디로 잡을거냐? 남로당이 주장했던 대로 30만명 수준으로 잡아서 숙청할거냐.
    반민특위에서 정한 6000여명의 반민족 행위자 범위가 적정한가? 해방 전후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고 있죠. 일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보면 남로당 총수 박헌영 조차도 어린 시절 부모는 박헌영이 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 님이 말씀하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순응하고, 그 체제안에서 성공하기를 바랬죠. 박정희도 매한가지였죠. 만주군 장교가 되서 독립군 때려잡으러 가죠.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죠. 많은
    하지만 독립운동가분들은 끝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와서 햇살을 맞는 그분들의 느낌이 어땠을까요. 우리가 이분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박정희와 같은 기회주의자가 바라는 세상 아닐까요?
    일본 군국주의 시대는 현대사에서도 어두운 시기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의 국가범죄행위시대입니다.
    반민특위 당시 이승만이 대놓고 풀어준 노덕술과 같은 친일 경찰의 반인도적 범죄 가담과 협력 정도, 범위, 지속성, 반복성, 비인도성, 악랄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온정적인 시각에 이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들을 재판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린 과연 미래에 누구를, 어떤 범죄를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친일세력 아무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부터 윤봉길 의사 처형당한 사람들의 그들이 당한 극한의 고통과 죽음을 호화호식하는 친일파 인사들과 비교해서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안중근 의사부터 수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존경을 표하는건 국가가 강제해서도 아니고, 그건 그분들의 희생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피님의 민중사관 시민혁명에 대해선 또 언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간단히만 얘기하면 시민혁명 말씀하시는데 그런 얘기는 노무현 전대통령도 "600년 역사동안 어쩌고 저쩌고 하는.... " 그런 연설은 본 적 있는데, 그 연설도 상당히 선동적이더군요. 시민혁명이 있었으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군부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타협으로 아시아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시민혁명 얘기하는데 지금 이집트나 리비아, 시리아처럼 내전 돌입해서 몇십만씩 죽고 그런 모습이 바람직한 건가요. 시민혁명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시는거 같습니다. 물론 완전 카스트로처럼 혁명 일으켜서 기득권 싹 쓸어버리면 속 시원하실지 모르겠는데, 그 수많은 인적 자원 숙청하고나서 잘된 나라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십시요. 건국초기면 모를까? 그 때야 정치적 이념이 다른 집단은 패권을 놓고 서로간의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지는것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지만요.
    가장 가까운 시기인 87년때로 돌아가봐도
    민주화세력이 87년에  6. 29 선언에도 끝까지 밀어붙여서 이승만 쫓아낸것처럼 전두환 쫓아내려고 했고, 특히 재야세력에서 그런 목소리가 컸죠. 전두환은 서울에 계엄령 선포하고 탱크로 밀어버리려고 했죠. 물론 미국도 계엄령 발포에 대해 분명히 반대 의사를 알리고, 민자당 안에서도 광주민주화 운동처럼 또 학살이 벌어지는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고, 어찌보면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이 있었기에 또 한번의 참변을 막을 수 있었던거죠.
    민주화 세력이 독재세력과 타협에 의해서 직선제 수용했는데, 이게 불만이신거 같은데( 김영삼과 김대중이 뻘짓해서 군사정권 연장시켜 주었으니)
    그 당시 강대강으로 붙어서 전두환 쫓아냈으면 지금쯤 전두환은 카다피처럼 사형됐겠지만,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렸을까요? 광주는 비교도 안되는 희생이 따랐을겁니다. 시민혁명이 말이 좋지만 강대강으로 붙는것이 꼭 좋은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봐도 알 수 있죠.

  • profile
    에이제이 2013.08.16 02:53

    아나키스트같은 말씀이네요.

    그 김구 선생도 일각에선 테러리스트로 까이는 시대죠.

    설사 잘못이 있었더라도, 후에는 나라를 위해 누구도 흉내 못 낼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런 사람이 영웅, 위인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 영웅, 위인이 되어야 할까요?

    존경받을 사람들은 국가 차원을 넘어서 존경받는 것이 아닐까요?


    과거의 영웅, 위인의 존재들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나라가 가진 수많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나갈만한

    영웅, 위인이 없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죠.


    우리 아이들이 어느 누구를 보고 배울 만한 사람으로 생각할지 걱정스럽습니다.

    아이들 눈에 들어오는 건 김연아, 박지성 같은 스포츠 스타들이나 연예인들 정도겠지요...

  • ?
    .피. 2013.08.16 03:30

    영웅과 위인 시스템이 필요하시는 군요

    내 자식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길 바라시는 거예요?


    전 그냥 

    가난한 사람 도울 줄 알고 양심을 지키며 배려할줄 아는 평범한 사람으로 키우겠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모습을 본받고 실천하게 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되서

    다시 아이를 키우고 

    이 아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이순신이나. 안중근이 아닌 

     "내 아버지"고 "어머니"다.

    이런 사람이 국가적 "영웅"이 아닐까요?


    아!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것은 이런게 아니라.

    양쪽면 둘다 바라보아야.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둘다 거짓일수 있지만..

  • ?
    .피. 2013.08.16 02:55

    요청하신 내용과 관계가 적지만 이런것을 두고 드라마틱 하다고 하는것 아닐까요?

     

      
    ▲ 김구.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김구

    대표적인 애국운동가들인 김구와 안중근. 이들은 겨레와 나라를 사랑한는점에서는 서로 일치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마터면 서로의 가슴에 총을 들이댈 뻔했다.

     

    한국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두 인물이, 그것도 같은 황해도 해주 출신인 두 인물이 계층적 갈등 때문에 상대방의 가슴에 총을 겨눌 뻔했던 아슬아슬한 장면. 그 장면을 살펴보기 전에, 두 사람이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점부터 확인해보자.

     

    "판에 박힌 상놈"이었던 김구

     

    김구(1876~1949)의 자서전인 <백범일지> 상권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황해도 해주에서 국유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소작농이었다.

     

    그는 "우리는 판에 박힌 상놈(평민)"이라고 했다. 물론 족보에는 12대 할아버지 때까지는 명문가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백범일지>에 따르면 사실상 11대 할아버지 이후로는 대대로 '상놈'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점을 보면, 김구가 서민 출신의 애국운동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양반은 아니었다.

     

    혹시 이 대목에서, 김구가 17세 때 과거시험에 응시한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그가 양반이 아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반이란 것은 법률적 개념이 아니라 관습적 개념이었기 때문에, 법제상으로는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었다.

     

    이는 대한민국 법률에 '피지배층과 지배층'이니 '서민층과 특권층'이니 하는 개념을 규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는 그저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따른 직역별 혹은 직업별 차등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상놈'들 중에도 경제력과 학습능력과 시간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학교 건립할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안중근

     

    안중근(1879~1910)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에 따르면, 그는 현감 출신의 유명한 자선사업가인 안인수의 손자인 동시에 진사 출신의 지식인인 안태훈의 아들이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이 가문은 1906년 3월 평안도 진남포(지금의 남포직할시)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양옥을 구입하고 삼흥학교·돈의학교를 건립할 정도로 매우 부유했다. 이 무렵 안중근은 평양에서 광산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사냥을 즐기고 좀더 커서는 총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류층 자제들과 달랐지만, 안중근은 경제력과 지위와 명예를 모두 갖춘 양반가문의 아들이었다. 이런 프로필을 보면, 그가 특권층 출신의 애국운동가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평소에 황해도 해주 땅에서 김구와 안중근이 만났다면, 그 장면이 어땠을까? 김구가 세 살 많기는 하지만, 나이란 것은 본래 동일한 신분 안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황해도에서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자제인 안중근 앞에서는 김구뿐만 아니라 김구의 할아버지라도 일단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조선왕조가 평화롭게 굴러갔다면, 김구와 안중근의 관계는 평생토록 그러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운명을 갖고 태어난 두 사람은 구한말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상호 적대적 입장에 서게 되었다. 김구는 서민 중심의 사회개혁운동인 동학농민전쟁(1894)에 참여했고, 안중근은 아버지 안태훈과 함께 동학군을 진압하는 민병대 활동에 참여했다. 김구와 안중근이 '친(親)서민 대 반(反)서민'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들은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적극적 주모자'로 활약했다. 19세의 김구는 동학교주 최시형으로부터 황해도 책임자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16세의 안중근은 민병대장인 아버지 밑에서 정찰특공대를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10대들이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10대 후반은 오늘날의 20대 후반에 맞먹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거기에다가 김구의 경우에는 리더십(조직력·언변·친화력)과 함께 열정이 출중했고, 안중근의 경우에도 리더십(양반신분·전투력 등)과 함께 열정이 탁월했다.

     

    또 평시와 달리 격변기가 되면 나이·경제력·지위·학력 같은 요소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학전쟁 당시에는 두 청년이 조직을 이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동학전쟁 중 전투 현장에서 충돌할 뻔했던 김구와 안중근

     

    흥미로운 것은, 서두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이 동학전쟁 중에 동일한 전투 현장에서 충돌할 뻔했다는 사실이다. 김구가 이끄는 동학군 부대가 해주 서쪽의 회학동에 진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청계동에서는 안태훈·안중근의 민병대가 포진하고 있었다. 김구와 안중근이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 대치했던 것이다. 

     

    만약 양측이 그대로 충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시한 적은 상대도 하지 않고 굵직한 적장만 골라서 저격하는 안중근. 두 부대가 격돌했다면 안중근의 사격 솜씨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양측의 충돌은 뜻밖의 방법으로 '무산'되었다. 민병대장 안태훈이 밀사를 보내 비밀 협정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의 부대와 김구의 부대만큼은 서로 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백범일지> 상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백범일지> 표지.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백범일지

    "나의 본진이 있는 회학동과 안 진사(안태훈)의 청계동이 불과 20리 상거(相距)이니 만일 내가 무모하게 청계동을 치려다가 패하면 내 생명과 명성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니, 그러하면 좋은 인재를 하나 잃어버리게 될 것인즉 안 진사가 나를 위하는 호의로 이 밀사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안태훈은 김구 같은 유능한 청년을 죽이기 싫어서 비밀협정을 제안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김구 부대와의 충돌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안응칠 역사>에 따르면 안태훈 부대는 70명 정도로 구성된 데 비해, <백범일지> 상권에 따르면 김구 부대는 포수만으로도 700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김구 입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태훈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구가 안태훈의 제의를 수용함에 따라, 김구와 안중근의 정면충돌은 다행히 '무산'되었다. 양측은 다른 전투현장에서는 열심히 싸우면서도 서로에 대해서만큼은 비밀협정을 준수했다. 김구와안중근이 그대로 격돌했다면, 한국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동학군이 패배한 뒤에 김구는 안태훈의 도움을 받아 청계동에서 4~5개월 동안 은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이 강제되면서 김구와 안중근 집안의 관계는 파탄나고 말았다. 단발령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자는 김구의 제안을 안태훈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의병운동이 가망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머리 깎는 게 나쁜 일도 아니니 지금은 천주교를 열심히 신봉하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의거를 일으키자는 게 안태훈의 답변이었다.

     

    거절당한 김구의 마음속에서는 동학전쟁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비록 상호 충돌은 피했지만, 자신과 안중근 가문이 한때나마 총부리를 겨누었던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김구의 기분이 <백범일지> 상권에 기록되어 있다.

     

    "안 진사 같은 인격으로서 되었거나 못 되었거나 제 나라에서 일어난 동학은 목숨을 내어놓고 토벌까지 하면서 서양 오랑캐의 천주학을 한다는 것부터 괴이한 일이거니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목을 잘릴지언정 머리를 깎지 못하겠다는 생각은커녕 단발할 생각까지 가졌다는 것은 대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 나라에서 일어난 동학은 목숨을 내어놓고 토벌까지 하면서' 단발령에 맞선 투쟁에는 몸을 사리는 안태훈의 태도를 보면서, 안중근 집안을 바라보는 김구의 시선은 확 달라졌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김구가 청계동을 떠났음은 물론이다. 동학전쟁 당시 비밀협정을 맺기 이전의 '상놈 대 양반'의 관계로 되돌아간 것이다.

     

    2가지 계기에 힘입어 상호 우호적 관계로 바뀌다

     

    이렇게 해서 자칫하면 평생 악감정만 남을 뻔했던 김구와 안중근 가문의 관계. 하지만 이 관계는 2가지 계기에 힘입어 상호 협력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하나는 김구 자신의 자각이었다. 안중근의 경우에는 죽기 직전에 집필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에서 동학군에 대한 변치 않는 증오심을 표출했지만, 김구의 경우에는 1896년에 일본인 살해혐의로 인천감옥에 투옥된 이후 <태서신사>나 <세계지지> 같은 중국 서적을 통해 서양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안중근 가문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백범일지> 상권에 따르면, 그는 지난날 자신이 안태훈과 절교한 것이 잘못이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좀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주권 상실이었다. 한때는 상호 적대적이었던 김구와 안중근 집안은 외세에 주권을 빼앗기면서부터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다. 안중근의 동생인 안공근은 김구가 참여한 임시정부의 핵심 간부로서 활동했고, 김구는 중일전쟁(1937~1945) 당시 일본군이 중국 동남부를 점령하자 그곳에 있는 안중근의 미망인을 구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을 기울였다.

      
    ▲ 김구(앞줄 중앙)와 안미생(뒷줄 중앙). 사진 출처는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
    ⓒ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구

     

    또 안중근의 조카딸인 안미생은 김구의 비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김구의 아들인 김인과 결혼까지 했다. 줄리엣과 로미오가 될 수도 있었을 안미생과 김인의 결합은 두 집안의 공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한때 적대적이었던 김구와 안중근 집안의 관계는 이렇게 해서 해피엔딩을 이루었다. 

     

    사회통합능력을 상실한 조선 사회는 동학전쟁을 계기로 '친서민 대 반서민'의 내분으로 치달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탓에 결국에는 외세에 주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 와중에 김구와 안중근 집안은 동학군과 진압군으로 나뉘어 충돌할 뻔도 했고 하마터면 평생 원수지간이 될 뻔도 했다.

     

    하지만, 외세에 주권을 빼앗기면서부터 이들은 계층도 학벌도 지역도 사상도 외세 앞에서는 다 무의미하다는 자각을 했고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의 장(場)에서 공고한 연대와 우정을 과시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계층·학벌·지역·사상보다 더 진하고 진한 '동포'의 감정을 바탕으로 '더 큰 나'를 형성해 나갔다.

     

     

  • profile
    [길동] 2013.08.16 09:58

    동학농민운동이 아니고 

    []동학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게 무슨 운동이라고,,,

    운동할때 목숨 걸고 싸웁니까??

    이게 다 식민사관에 쪄든 사학자들 덕분입니다.

  • ?
    .피. 2013.08.16 13:34

    그렇네요.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혁명이 맞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자기류 2013.08.17 23:02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여 독립운동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것도 팩트이고..

    하지만 동학민중혁명을 탄압하여 무너져가던 조선 체제에서 수구적 포지션에 섰던 것도 사실이지요.

     

    이 두가지가 사안별로 양립하면 안되나요...

    안중근은 탁월한 업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였으며, 한편으로는 보수기득권을 옹호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는 양립할 수 없나요?

     

    양립시키더라도.. 그는 존경할만한 인물이었음과 동시에 엄연한 시대적 한계를 가졌던 복잡한 인물이었다..

    저는 그렇게 저냥반을 이해합니다.

     

    방송에서 안중근의 업적만을 포커스로 두고 간편하게 영웅만들기를 한다면 그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인물과 그것을 수용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양쪽에게 도움이 안될 거라 봅니다.

    이 부분에서는 피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 ?
    체리보이즈 2013.08.31 12:36

    맞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다 공과가 있고, 실패를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게 인간의 모습이죠. 또 지금의 잣대로 그 당시를 평가하는것과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고, 안중근 의사도 사상적인 한계를 많이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건 안중근에게 우호적인 책에서도 모두 지적하는 것이지죠.


    그런데 왜 사실이 아닌걸, 적었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박근혜가 되면서 인터넷에선 경상도 가해자론, 전라도 피해자론 어찌보면 철지난 지역감정 부추기는 글들이 상당히 돌아다니더군요. 그런 뉘앙스까지 풍기기에 댓글을 적었습니다.

     전라도 부녀자 학살이라는 일베 말고는 출처도 없는 글을 쓰셨는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만약에 백선엽이 빨치산 진압 중에 양민을 학살했다고 얘기를 하면 그것에 대한 사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료가 신빙성이 있든 없든,

    최소한 사료가 없다면 믿을만한 증언이라도 있어야죠.



  • ?
    .피. 2013.09.02 23:47

    동학혁명의 성격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것 같습니다만.

    옛부터 가족 구성원중 한명 이라도 체재에 반역하는 일을 하면 3대나 일가친척까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기 쉽상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농민혁명은 가족 구성원 전체로 구성된 혁명 일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녀자들은 혁명에 가담한 가장들의 밥이나 뒤치닥거리를 할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자식까지 딸린

    가족구성원 전체가 가담한 형태의 혁명입니다. 70명의 군대로 3000명 동학폭도를  죽였다. 

    그럼 그 뒤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동포를 짓밟고 일어서 이토히로부미 같은 인물 10명, 100명을 죽이는 일보다. 동포 1명을 살리는 일이 더 뜻깊은 일일 것이다.

    라고요.

    박근혜 정부고 뭐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던 사실이고.

    마치 일베 글인양 비하 하시는데. 정부가 일부러 수치스런 역사를 국민에게 선전해서 알릴 필요는 없겠죠. 

    좀더 관심을 갖고 감추어진 역사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주 동학농민군 학살 자료 공개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77615600505016135





    동학 농민 학살한 일본군 병사 `진중일기' 공개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564253 동학농민혁명 120 주년을 맞이해서 학계에서 사료를 발표할 예정이라니 어떤식으로 농민들을 학살했는지 그때 살펴보세요. 사료로는 30만명 가까이 학살했다네요.
  • ?
    체리보이즈 2013.09.05 21:02
    이 토벌대에 대장으로 나선 안중근은 전라도에 주둔하고 있던 동학농민들을 부녀자 관계없이 무참히 학살한다.

    아니 그런데 사실이 아닌걸 마치 사실인것처럼 얘기했으면, 자신이 잘못알았다고 인정하고, 수정하면 되는데
    왜 인정을 안하고 또 다른 원론적인 얘기만 하십니까?
    그렇게 저 글이 잘못됐다는 얘기 하기가 어려우신가요? 저를 포함해서 다른분들도 안중근의

    안중근이 무슨 이 토벌대 대장입니까? 한명의 민병대중 한명이죠. 그리고 안중근은 전라도에서 싸운적도 없는데 전라도에서 어떻게 동학농민을 부녀자 관계없이 무참히 학살합니까?
    이런 선동적인 글을 쓰고도, 끝까지 수정안하고
    안중근이 제노사이드에 동참했다는 소스도 없고, 자꾸 학살자라고 얘기하는데
    근거도 못대고, 계속 딴 얘기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또 70명으로 동학군 3000명 죽입니까? 우금치 전투에 대해서 좀 만 알아보면 이런 글 못쓸텐데요.
    우선 사실관계 좀 확인하고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또 제노사이드로 관점을 옮기시는데 우선 안중근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올렸다고 사과하는게 순서 아닌가요? 왜 자꾸 자신의 잘못된 글을 인정안하십니까?
    인정을 하고 그 다음에 동학군 얘기로 넘어가는것이 맞죠.
    제발 피 님이 쓰신 안중근 글이 일베에만 있다는 거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동학 혁명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제가 근거도 없이 김구, 전봉준이 경상도에서 지주, 양반집 부녀자를 마구 학살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피님은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링크 다신 얘기는 새로운 얘기도 아니고 이미 다 아는 얘기고요. 2013년 8월이라 꽤 된 얘긴데 이제와서 뉴스에 나오나요. 저 내용 관련된 책은 봤지만, 엄연히 정부군의 공동 잘못을 일본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것처럼 얘기하는데, 좀 어이가 없더군요.
     여순사건부터 6. 25때까지 전쟁부역자들도 다 인민재판으로 즉결 처형했는데 왕정국가였던 저 때야 더 했죠. 그런데 또 반대로 동학군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또 기득권층 다 단두대로 보내는게 진실이죠

    부끄러운 역사를 보라 하셨는데 제주 4.3 부터 여순사건, 보도연맹 등 한국의 제노사이드 역사에 대해 피님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30만이면 100% 뻥이라고 봅니다. 6. 25 때 양민학살부터 여순 사건, 제주  4.3 수많은 제노사이드를 봤지만  강정구 교수처럼 각 진영의 사람들의 부풀리기는 신물이 나더군요.

    "동포를 짓밟고 일어서 이토히로부미 같은 인물 10명, 100명을 죽이는 일보다. 동포 1명을 살리는 일이 더 뜻깊은 일일 것이다."

    또 이런 선동적이고 이상적인 글이 어딨습니까? 동학군은 동포 1명 살리기 싫어서 그렇게 지주부터 관군들 죽였습니까?
    동학군은 뭐 평화시위로 전리품 뺐은줄 알겠습니다.

    선악의 개념은 상대적인거죠. 내전에서 반란군이 죽이는건 괜찮고,정부군이 죽이는건 안되는 그런 이상한 논리가 어딨습니까?

    아니 피님은 도대체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인권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도 mb때는 물론이고, 노무현 때도 한미 fta 반대 시위하는 힘없는 농민들 방패를 찍어죽였습니다. 시위대에게도 공권력 투입해서 두둘겨패고, 방패로 찍어죽이는게 현실이에요.

    엄연히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혁명에 대해서 정부군이 손놓고  박수치기를 바라십니까?
    여순사건때처럼 반란군 측에서 1000명 넘게 죽여도 그냥 가만히 있는게 정상입니까? 혼란을 잠재우는게 필요하고
    당연히 내전으로 돌입하는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당시 시대 배경으로 보면  동학군과의 내전 상태였던게 사실 아닙니까? 전봉준하고 대원군간의 밀월관계인건 아시나요? 대원군이 체포된 동학군을 대거 구제하고 석방한것도 사실 아닙니까?
    대원군이 동학군을 일으키도록 전봉준을 사주한건 충분히 자료로 입증되지 않습니까? 이게 동학군의 전체 이유일순 없지만
    어떻게 동학군은 절대선인것처럼 얘기하십니까? 역사 논쟁은 계속 되야하는게 정상입니다. 이제와서 시간이 흘러서보니 동학혁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거지.
    자꾸 지금의 이상적인 잣대로 그 시대를 평가하십니까?
  • profile
    디브이최 2013.08.24 09:50

    쇼비니즘 [ chauvinism ].....누구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중1년 때 동학혁명을 연극으로 접하고 집중적을 파본적이 있죠. 

  • ?
    향초 2013.09.07 15:30

    댓글에서 배워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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